4년 만에 유렵을 방문해서 오페라하우스 3곳의 공연을 감상했다. 짧은 소감을 써본다.
1. 살로메-로열 오페라하우스(런던)
4년전에 비해 전반적으로 수준이 더 떨어진 것 같다. 특히 오케스트라는 지휘자의 차이
(예전은 민코프스키였던 걸로 기억)만으로 설명이 어려울 정도로 음색, 앙상블, 표현력,
다이내믹 변화 등 모든 것이 둔중하고 밋밋하다. 관현악 비중이 매우 중요한 슈트라우스
작품에서 이러니 공연 수준은 굳이 얘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솔직히 오늘 공연만으로만
판단한다면 오케스트라(지휘자 포함)는 서슴없이 2류라고 얘기하겠다.
가수들도 공연 구제에 별반 도움이 되지 못했는데, 기대했던 살로메 여가수(유투브에서 본
기억에는 좋았다)는 그냥 노래나 연기나 무난함 이상의 별다른 걸 보여주지 못했고
요한 처형 이후 후반부에 독자적으로 끌어가는 부분은 지루할 뿐이었다(사실 나이도 50대라
10대 중반 살로메 이미지와 맞지 않는다) 그 외 가수는 헤롯왕 정도가 노련한 연기를
보여줬고 나머지는 다 평범 이하였다.
연출은 일곱 베일의 춤에 올인한 듯 한데, 살로메와 헤롯이 7개의 방을 통과하면서 각 방에서
살로메가 아이부터 여성까지 성장하는 과정을 순차적으로 보여준다. 살로메는 헤롯과의
결혼식에 입을 옷을 고르다가 혐오감을 주체하지 못해 광기를 표출하지만 결국에는
헤롯왕의 집요한 설득과 강요에 처녀성을 강탈당하는 듯한 은유적인 scene으로 끝난다
(다음 등장에서 허리를 숙이고 아픈 표정으로 등장한다). 물론 기대(50대 여가수에게?)
했던 옷을 벗는 신은 별로 없다. 연출은 참신하다고 까진 아니고 볼만은 했다 정도..
결론은 어떠한 장점도 찾기 힘들었던 기대보다 훨씬 이하의 공연. 로열오페라 하우스
좌석표가 3곳중 가장 비쌌기에 속이 쓰렸다..생각 외로 관객들 반응은 좋은 편이었다
(비엔나였으면 박수가 나오기나 했을까 싶다). 그래도 이곳의 장점이라면 무대 중앙의 영어
자막이 보기 쉽다는 점이다. 아마도 당분간은 여기를 다시 찾지는 않을 듯 하다..
2. 토스카-헝가리 국립 오페라하우스(부다페스트)
헝가리 가극장 오페라 관람이 부다페스트 방문의 주목적이었는데, 표를 늦게 예매해서
마지막으로 하나 남은 뒷구석 자리에 앉았다. 이 떄문에 가수들의 연기를 제대로 관찰하기
힘들어서 아쉬웠고, 자막은 무대 중앙에 헝가리어!밖에 제공되지 않아서(그나마 1막에서는
운영진의 실수로 일부만 보였다--) 엣날에 칼라스 토스카를 들었던 기억을 더듬으면서
관람해야 했다. 공연 수준과 별도로 헝가리인들의 오페라 열정은 확실히 대단한 듯 하다.
지역가수들 위주의 공연인데도 거의 매진이었으니 말이다. 막간에 계속 가수들이
인사하면서 박수를 받고 인터미션을 가지는 것도 이곳의 특징이다(덕분에 늦게 끝난다..)
오케스트라는 로열 오페라하우스 보다는 한결 나았다. 바이올린 파트가 밋밋한 게 아쉽지만
그래도 전반적으로 지휘자에 따라 잘 반응하는 듯 했고 첼로 파트가 가장 돋보였는데
특히 첼로 수석의 실력이 대단했다 자연스러운 비브라토로 선율을 혼자 연주하는 부분은
집중하느라 솔직히 가수 노래가 하나도 안 들릴 정도였다. 독주자로 활동해도 될 실력 같다..
가수들은 헝가리 지역에서 활동하는 이들로 주로 섭외한 듯 한데, 토스카 가수 덩치가 가장
컸다(더 이상 얘기할 필요가 있을까?).. 노래 스타일은 푸치니에 적합한 스핀토 같은데
시작은 좋다가 중간에 자주 막히고 고음이 잘 뻗지 않았다. 전성기가 지난 것 같은 느낌이다..
카바라도시는 컨디션이 아주 안 좋은지 그냥 목소리가 안 나왔다. 제일 실망스러웠던 배역.
스카르피아는 1막에서는 돋보이지 않다가 2막부터는 다른 주역이 답이 없다고 느꼈는지
(아님 힘을 아꼈던 건지) 훨씬 커진 울림과 연기력으로 몰입도를 높여 참사를 막았다.
조역 중에서는 신부가 훌륭했고, 연출은 전쟁을 배경으로 해서 탱크를 감옥으로 설정한 건
참신해서 볼 만 했다.
결론은 1.첼로 수석 2.스카르피아가 멱살 잡고 끌고 간 공연. 다만 멀리서 봤기에 연기력은
생각보다 더 좋았을 수도 있다..
3. 세빌리아의 이발사-빈 오페라하우스(빈)
그래. 바로 이런 공연을 원했다. 모든 가수는 이 어려운 오페라 라인을 대부분 적확하게 따라
불렀고(잘 부르는 건 다른 문제지만), 잘 통제된 부지런한 율동과 움직임까지 더해서 혼신의
연기를 보여줬다. 1,2에 비해 가수들의 노래 기본기와 연기 난이도가 엄청난 차이가 났다.
배역중에 노래를 부르다가 명백히 힘에 부쳐 보였던 적이 한두번 밖에 없었던 것 같다.
단점을 꼽자면 노래를 여유 있게, 참 맛깔나게 잘 부르는 가수는 없었던 것 같다.
글쎄 너무 과한 요구인가? 가장 기대가 컸던 러시아 출신 로시나 가수가 아리아에서 좀
터져줬으면 참 좋았을 것이다. 그리고 남아공 출신의 흑인 알마비바 백작은 미리 본
유투브에서도 느꼈지만 성량이 기본적으로 작은 게 약점이다. 그외 가수들은 다 무난히
배역에 주어진 노래를 잘 소화한 편이다.
이 오페라는 처음 들었는데 음악은 참 좋지만 지휘자와 악단이 시시각각 변하는 미묘한
분위기를 잘 포착하여 섬세하게 연주하기가 대단히 까다롭다고 생각된다. 오케스트라는
시대관행에 맞춰 소규모로 구성됐는데 실수가 나오면 바로 눈에 띄는 위험성이 있음에도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대단한 집중력으로 치밀한 앙상블과 pp~ff 사이의 미묘한 다이내믹
변화를 잘 묘사했다. 지휘자도 상당히 예민한 귀와 섬세한 감수성을 가지고 있었다.
약간의 아쉬움이라면 바이올린 1주자를 비롯한 제1 바이올린 파트가 빈필이라면 좀더
아름다운 음색이 나올 수 있을 것 같긴 했다. 레치타티보 반주는 쳄발로가 아닌
포르테피아노가 담당했는데 무난했다. 인터미션에서 바이올린 주자와 같이 베토벤 봄 소나타
1악장을 연주했었는데 즐거워 보였다.
근데 빈도 리브레토 자막은 좋은 좌석에만 설치되어 있었기에-- 나도 수많은 레치타티보를
들으면서 상상력을 많이 동원할 수밖에 없었고 집중하기 쉽지 않았다. 그나마 자리가
무대에서 가까운 편이라 가수들 연기를 잘 관찰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인터미션이 끝나고
나니 이전에 있던 옆자리와 뒷자리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공연수준이 불만이었을까 아님
자막이 없어 이해가 안 돼서 인내하기 힘들었던 것인지?
또 하나의 (내 기준에서의) 단점은 추상적인 무대 연출이었는데 여러 원색의 직사각형
모양의 크고 긴 플라스틱 덩어리들을 천장에 매달아서 무대 뒤에 주욱 배치하고 계속
이동을 시켰는데 솔직히 무엇을 의도하는지 현대 미술에 무지한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공연이 끝나고 관객들의 반응이 생각보다 미진해서 놀랐다. 원래 호응을 적게 하는지 아니면
이 정도의 공연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것인지..결론적으로 그래도 빈 가극장에서 공연을
본다면 적어도 실망하지는 않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력이 떨어지는 가수는 생존하기
어려운 환경으로 보인다. 빈필이 주축이 된 오케스트라는 당연히 기본 수준은 보장한다.
유럽에서 오페라를 듣는다면 빈 가극장이 절대로 추천 우선 순위에서 빠질 수 없을 것이다.